히브리어로 ‘형제’를 뜻하는 단어는 아흐(ach)입니다. 일상 히브리어에서는 아흐(ach) 와 쉘리(sheli)의 축약어인 아히(achi)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되는데, 이는 ‘나의 형제’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혈연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고, 종종 강한 유대감을 가진 친한 친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킹 제임스 성경 사전》에 따르면 ‘형제’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367번이나 사용됩니다. 이처럼 빈번히 사용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형제 간의 사랑과 연합 그리고 유대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감은 종종 적의 공격을 받습니다. 성경 초반부에서도 형제 사이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3~9절에서는 카인이 자신의 형제 아벨을 살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 25장 22~34절에서는 야곱과 에서가 태중에서부터 다투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37장부터는 야곱의 아들인 요셉과 형들 사이의 경쟁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유대 민족은 성경에서 하나의 가족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10월 7일,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공격을 받자 유대 가족이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전 세계가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적들은 그들이 싸우고 있는 대상이 단순히 하나의 국가나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가족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는 이러한 연합과 형제애의 정신이 바탕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오디오북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회고록인 《Bibi: My Story》를 들었습니다. 이 회고록에서는 그의 가족과 이스라엘 군대와 자신의 정치적 신념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네타냐후 총리의 형제들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베냐민을 비롯한 요나단과 이도, 이 세 형제는 모두 이스라엘 방위군의 정예 특수부대에 입대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엔테베 국제공항에서 이스라엘 인질들을 구출하는 영웅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른 모습이지만, 베냐민 네타냐후의 조국을 위한 노력 또한 요나단의 영웅적인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이 형제들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 하나로 연합하였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어려움과 상실에 빠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재건 이후로 7번의 주요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스라엘이 평화를 갈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이는 9월 27일 유엔 총회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언급한 주요 쟁점 중 하나였습니다.
브리지스 포 피스(Bridges for Peace)의 사역에는 많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이스라엘 땅에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11장 11~1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하나님께서 열방에서 자신의 백성을 모으신다고 말씀하실 때, 이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형제들이 모여 분열을 초월하고 가족의 유대감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의 거리를 걷다 보면, 러시아, 에티오피아, 인도, 중국,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모로코, 아랍 국가 출신의 유대인들이 히브리적 사고와 신앙을 공유하며 함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렇듯이 이들 사이에도 때로는 화합이, 때로는 갈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토라(창세기~신명기)를 묵상하고, 안식일(샤밧)과 절기를 지키는 것, 그리고 슬프게도 테러와 반유대주의 박해에 직면하는 상황들입니다.
시편 133편 1절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기록된 것은 다윗이 분열과 불화에 맞서 기도한 내용입니다. 이는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의 형들은 그가 골리앗을 무찌를 때까지 그를 무시했고, 다윗은 치열한 노력 끝에 형제들의 존경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는 연합과 형제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하나로 서 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머물 것임을 알았습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3:2~3)
어렸을 때 저는 남매 중 아들 혼자로 때때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학교나 교회 친구 외에 관심사를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고 늘 바라왔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18 살이 되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전에 결혼을 하셨었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아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4년이 되었습니다. 건강 문제로 세상을 떠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신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그의 첫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조사 끝에, 그가 18살 때 뉴질랜드로 이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지와 이메일을 수없이 보냈습니다. 이름밖에 모르는 그를 찾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우리의 노력은 헛수고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던 2018년 어느 날,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복형제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는 만날 약속을 잡았고, 50년 만에 처음으로 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 갔고, 저는 곧 그가 신앙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133편 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구절이 그날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복형제에게 느낀 형제애와 연합의 감정은 엄청났습니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처음 만났지만, 우리의 대화는 매우 친근했고 오래 알던 사람처럼 잘 통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경험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역사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을 뿐이었습니다. 청소년 사역, 길거리 전도,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노력 면에서도 우리의 사역은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이스라엘과 성경의 권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부분에서도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정말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형제를 위해 계획을 세우셨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는 유대 민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수천 년 동안 지켜보셨고, 그들의 마음에 말씀을 세우시며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여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연합은 아직 완전하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는 여전히 의견 차이와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마스와 헤즈볼라와 같은 적에 맞서는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국가가 한마음과 한뜻으로 서 있습니다. 이러한 연합이 더욱 자라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 받고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합시다.
이스라엘 민족을 형제애의 끈으로 단단히 묶는 또 다른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1장 8~9절은 유대 정체성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고 많은 어려운 도전 가운데서 적들이 가득한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연합하여 그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적을 물리치고 그들의 유산을 차지했습니다. 다윗도 시편 122편 1~9절에서 연합의 중요성에 대해 기록하며, 매년 주님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12지파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인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모든 지파가 동시에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그 현장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분열과 갈등이 생기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 그 자리는 각 지역과 지파 차원에서의 토지 분쟁이나 동물 거래 문제와 같은 불화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모습을 보면 그곳에 온 진정한 이유에 집중하며 실제적인 평화와 평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구원의 집인 주의 성전에서 하나가 되어 그의 임재 앞에 서는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전서 3장 8~9절이 시편 122편 1~9절의 메시지를 반영한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현대 이스라엘 또한 1948년 재건 이후로 많은 적대적인 군대와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스라엘 안에는 많은 갈등과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0월 7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 사회의 초점이 달라졌습니다. 전쟁이 가자지구와 북부 전선에서 격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토라와 샤밧을 온전히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은 이스라엘 국민에게 큰 심적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하나님을 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적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반유대주의적 여론에도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서 형제애와 연합으로 이스라엘 국민들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주님의 축복이 이스라엘 땅에 임하실 것을 믿습니다.
마이클 트리하른(Michael Treharne) UK National Director
Photo Credit: Click on photo to see credit
Netanyahu, Benjamin. Bibi: My Story. New York, New York: Threshold Editions, 2022.
“Brother.” King James Bible Dictionary. https://www.kingjamesbibledictionary.com/Dictionary/brother
All logos and trademarks in this site are property of their respective owner. All other materials are property of BFP Korea. Copyright © 2024.
Website Site Design by J-Town Internet Services Ltd. - Based in Jerusalem and Serving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