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구시가지 아래, 성전산 남쪽에는 지구상에서 고고학적으로 가장 많이 발굴된 유적지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성(City of David)입니다. 이스라엘을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과 실로암 연못(Pool of Siloam)을 방문하기 위해 다윗성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윗성이 예루살렘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윗성은 예루살렘이 시작된 곳입니다. 관광객들은 구시가지를 통과하면서 남유다 왕국, 하스모니아 왕조 혹은 헤롯왕 시대의 예루살렘 유적을 볼 수는 있겠지만, 다윗성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성경의 진원지인 ‘다윗왕의 예루살렘’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다윗성이라는 명칭은 성경에 47회 등장하며, 가나안 여부스 족속의 요새이자 다윗에게 함락된 여부스(Jebus, 예루살렘)라는 이름의 고대 성읍이 그 기원입니다. 역대상 11장 4절부터 9절에서 우리는 요압이 수로를 통해 성읍으로 들어가 다윗왕의 군대에게 성문을 열어준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의 요새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이미 고대 성읍으로 굳건히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고고학자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원전 10세기 초에 가나안 여부스 족속의 도시 예루살렘은 다윗에게 함락되고 그의 새로운 왕국의 수도로 선택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다윗이 정복했을 당시, 이미 그곳은 2천 년 동안 자리해 왔을 뿐 아니라 왕도(王都)로서 천 년을 보낸 위엄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습니다.”
여부스 족속의 성읍 예루살렘의 지리적 위치는 다윗이 이 곳을 정복하기로 한 결정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도시는 군사 요충지에 자리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외국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예루살렘은 고도가 높고 가파른 계곡으로 둘러싸인 전략적 가치를 넘어서, 이후 성전이 세워지는(역대하 3:1) 모리아 산(창세기 22:1-19) 인근에 있다는 점은 다윗이 그의 권력을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왕좌를 세우기로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후 다윗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사서(사무엘하 24장)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으며, 바로 이곳 모리아 산 가장 높은 곳에 솔로몬 성전(역대하 3:1)이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정복 후, 다윗왕은 이곳을 고대 가나안 여부스 족속의 성읍에서 이스라엘의 성읍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마침내 모든 지파가 절기마다 모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신명기 16:16, 누가복음 2:41-47).
다윗성은 통일 군주국을 위한 왕권 통치의 행정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분의 이름을 두시고 그분의 쉐키나(shekinah)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우는 (열왕기상 8:10) 영적 진원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셨고 그분의 나라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그분께서 택하신 왕조에 능력을 더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언약을 지키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신실하심(창세기 15장, 시편 105편)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은 시온(Zion)이라고도 하는데 (사무엘하 5:7),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Hebrew Scriptures, 구약)에 176번, 사도들의 글(Writings of the Apostles, 신약)에 7번 등장합니다. 이 이름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배의 중심지인 시온산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열왕기하 19:31, 시편 2:6). 또 이 단어는 19세기 유대 운동인 시온주의(Zionism)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시온주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사야 11:12, 에스겔 36장) 유대 민족을 조상들의 고토로 다시 모으는 집단적 목표를 가지고 일어난 운동입니다.
기원전 10세기에 다윗이 마주한 여부스 족속의 성읍 예루살렘은 큰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은 예루살렘 성읍의 면적을 12.35에이커(49,979 제곱미터)로 추정하며, 다윗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와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봅니다. 이후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의 규모와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분단된 왕국 시대에는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롯 대왕의 통치 아래 예루살렘은 그 크기와 부와 위상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의 능력을 알게 된 두로 왕 히람은 왕궁을 건축하여 다윗에게 영예를 돌렸습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신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 그의 궁전을 건축하게 하였더라”(역대상 14:1) 이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여호와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역대상 14:2b) 그의 나라가 높이 들림을 받은 것으로 인해 여호와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윗 궁전의 위치는 사무엘하 5장 17절에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내려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했을 당시 다윗은 새로운 궁전에 있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한 요새로 내려간 것 같습니다. 마자르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궁전보다 낮은 곳에 성읍의 요새가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요새는 가나안 성읍의 북단(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으로 그 주변을 전부 통솔하는 곳)에 축성되었다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다윗의 새로운 궁전은 성곽의 바로 바깥쪽에 지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고고학자들은 다윗성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궁전에 대해 건축물의 위치 및 크기를 자세히 기록한 문서들과 당대 다른 궁전들과의 구조적 유사성 및 현장에서 발굴된 부의 규모를 고려할 때 다윗 왕의 궁전이 맞다고 확증하였습니다. 관광객들은 다윗성을 방문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두로 왕 히람의 장인들과 일꾼들이 지은 궁전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다윗성은 한 세기가 넘게 고고학 연구의 중심지였습니다. 주목할 만한 기록은 1838년 미국의 성경 학자 에드워드 로빈슨(Edward Robinson)의 탐험에서부터 영국의 찰스 워렌 장군(General Sir Charles Warren)이 1867년 발견한 ‘워렌 수구(Warren’s Shaft)’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1880년에는 실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앗수르인들이 모르게 기혼샘(Gihon Spring) 물을 성읍으로 가져오기 위해 남과 북 양쪽에서 인부들이 끌로 돌을 뚫어 터널을 만든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1899년 기혼샘 수로 발견, 1923-1925년 맥칼리스터(Macalister)와 던컨(Duncan)의 탐험, 케트린 케년(Kathleen Kenyon)의 1974년 발굴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의 발견 등이 있습니다. 역사적 위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현재까지 가장 놀라운 두 가지 발견으로는, 실로암 연못까지 흘러가는 히스기야 터널(열왕기하 20:20)과 실로암에서 성전산 위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순례자의 길(Pilgrims Way)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윗성의 수로는 매우 매혹적이며 어떻게 이 성읍이 적들의 포위와 공격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물을 얻고 보존하여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고대 예루살렘 학자인 힐렐 게바(Hillel Geva)는 생명에 필수적인 물의 근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설명합니다.
“고대 예루살렘에서 유일하고 지속적인 물 공급원은 요새화된 성읍의 경계 너머 기드론 계곡(Kidron Valley)에 위치한 동굴에 있습니다. 기혼샘은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지 않고 동굴 바닥의 균열을 통해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지하수에 의해 물이 공급되는 사이펀형(syphon-type) 카르스트 용천(karst spring)입니다. 기혼샘의 물은 동굴 및 동굴에 가까운 암반의 웅덩이에서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기혼샘의 물을 담고 저장하고 보존하기 위한 3개의 지하 공급 시스템은 서로 다른 시기에 건설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워렌 수구(Warrens Shaft)’로 알려진 수직 통로로, 이는 고대 예루살렘 주민들이 기혼샘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두번째는 다윗 성의 동쪽 경사면 기슭을 따라 물이 흐르게 한 실로암 수로(Siloam Channel)이며, 일부는 암반 터널 그리고 일부는 성벽 바깥에 노출된 형태로 기드론 계곡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세번째는 533미터 길이의 히스기야 터널로, 셋 중 가장 정교한 공급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터널은 앗수르의 위협 때문에 건설되었으며, 히스기야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받아 대규모 저수지를 만들 수 있는 한 장소로 흘려보내도록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 물을 저장한 덕분에 간헐적으로 흐르는 샘물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물 공급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의 눈을 피해 성읍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히스기야 터널이 물의 방향을 바꾸면서 가장 유명해진 것은 예수님(예슈아)이 소경을 고치신 실로암 연못이었습니다(요한복음 9:7-11). 이곳은 또한 순례자의 길을 통해 성전에 오르려는 순례자들이 유대교 정결 의식을 행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기독교 세례의 기원인 이 침례 의식은 몸 전체를 물에 담그는 정결 의식으로 기도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창세기 35:2, 출애굽기 19:10). 제사장들 역시 미크바옷(mikva’ot)에서 반복적으로 몸을 씻으면서 정결 의식을 행했습니다(레위기 16:4-24).
실로암 연못과 기혼샘은 솔로몬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장소로 유명해졌으며(열왕기상 1:33, 38, 45) 이후에는 ‘메시아 시대’와 ‘성령의 부어주심’과 같은 주제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헤롯 시대에 순례자의 길은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실로암 연못에서 성전산 위로 올라가는 대로였습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순례자의 길의 3분의 1 이상을 발견했습니다. 2000년 전 순례자의 길은 사방이 뚫린 대로였지만, 지금은 그 위에 위치한 주택들 및 18.3미터 길이의 도로를 보존하기 위해 강철 기둥으로 지지하는 돌 천장을 덮은 터널 형태입니다.
최근에 BFP의 리더들은 다윗성을 방문하여 순례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2000년 된 판석 위를 걸으면서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디딘 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실로암 연못에서 성전으로 올라갈 때 디뎠던 바로 그 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다윗성을 안내해 준 가이드가 놀라운 한 가지의 사실을 지적했을 때였습니다. 순례자의 길은 역사의 후손들을 위한 고고학적 발굴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실질적이고 영적인 기능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14장에서 예언한 대로 메시아 왕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 열방이 예루살렘에 모여 장막절을 기념할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열방을 맞이할 수 있도록 순례자의 길과 실로암 연못이 반드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터 패스트 목사(Rev. Peter J. Fast)
Bridges for Peace 캐나다 지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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