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세상에 있는 모든 책 중에서 가장 특별한 책입니다. 성경은 보통의 책들과는 매우 다릅니다. 성경은 사람의 말이나 생각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닌,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성경을 끊임없이 읽었는데, 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마치 생명수를 마시는 것 같았고, 성경책을 만질 때마다 그 페이지에 담겨 있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기에 그저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성경은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보물상자 같았습니다. 저는 말씀의 모든 언약이 성취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더 많이 읽을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허버트 로키어 (Herbert Lockyer)가 쓴 “성경의 모든 약속”에 따르면, 성경에는 8,000개 이상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사람들 간에 맺어진 약속이고, 또 일부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한 서약입니다. 그러나 7,000개가 넘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약속이며, 대부분은 이스라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약속 중 수백 가지가 성취되는 것을 목도하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및 성경적 시대의 약속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얼마나 유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혼란 중 일부는 우리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복잡한 상황에 대한 답을 찾거나 심오한 신학적 원리 또는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말씀을 찾아 나서지만, 정작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깊은 계시라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모든 단어와 구절,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성과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6-26절, 마가복음 10장 17-27절, 누가복음 18장 18-27절에서는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예슈아)께 나아가 묻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 청년이 본인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기에 더 깊은 가르침을 원한다고 대답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생각을 고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그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9장21절). 복음서에 따르면 이 말씀을 들은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떠났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성경 공부에서 나누는 대화는 세상적 소유물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구원에서 멀어진 어리석은 청년을 정죄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후 이어지는 구절에서 예수님은 부자 청년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이 그 선택을 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그 청년에 대한 연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는 부자 청년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16절에 나오는 품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은 점심 때에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은 일이 끝날 시간이 가까워서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모두가 동일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성경 공부에서 우리의 대화는 무엇이 공정한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얼마나 불공평한지를 생각합니다. 고용법에 부합하는지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메시지의 핵심은 공평함에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에 관한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도 이와 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기 훨씬 전부터 그의 몫을 요구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그가 낭비할 것을 잘 알면서도 돈을 내주었습니다. 우리는 둘째 아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읽으면서 그의 어리석음에 혀를 차며 그가 돼지우리에 갇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날마다 문 앞에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아들을 향해 달려가 악취나는 몸을 껴안고 더럽혀진 뺨에 입을 맞추며,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아들에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부어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철없는 아들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에 관한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거의 2천 년 동안 크리스천들은 타나크(구약 성경)의 예언서들을 읽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의 핵심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 실수는 거의 2천 년 동안의 기독교적 반유대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선택받은 백성들이 나쁜 결정을 하며, 그들의 조상이 믿는 하나님을 떠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선지자들은 예언했습니다. 어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경건하지 않은 행동을 계속할 경우 비극적이고 불행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며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예언에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으며, 부정한 선택을 되돌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분한 용서와 회복의 약속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이 여러 세대를 지나며 이 구절들을 읽을 때,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스라엘을 정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그렇게 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잊을 수 있지?” 라며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한지를 말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선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그들의 죄악의 깊이와 비교하지 않고, 우리에게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년 동안 너무나 많은 크리스천들은 메시지의 핵심인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자비를 놓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이사야 60장 1-3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빛과 어둠의 개념은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로, 어떤 어두운 시기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상기시켜줍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에 대해 말하며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합니다(이사야 9장 2절).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본인을 직접 ‘세상의 빛’(요한복음 8장 12절)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제자들을 ‘세상의 빛’(마태복음 5장 14절)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성경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열방의 빛이 되라는 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소명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애굽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볼 수 있는 시기로 생각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친밀한 방식으로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셨던 때입니다. 이사야가 60장의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치고, 또 모세가 그 빛나는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가릴 수 밖에 없었던 출애굽 이야기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들으며 모세와 하나님의 놀라운 만남과 같은 일이 이번에도 일어나 모든 나라가 이와 같은 경험을 하길 바랐을 것입니다.
이사야와 타나크(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의 말에 따르면, 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으며 그의 임재는 구원과 축복, 정의와 평화를 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에게 빛이 없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빛이 없는 그들 위에 해처럼 떠오르는 빛입니다. 이스라엘의 고대 학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파트너십에 대해 놀라운 미드라쉬(Midrash, 유대교적 성경 해석과 설명)를 전했습니다. “내가 바로 빛이다” 거룩하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빛을 주었다. 너희 빛은 곧 나의 빛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협력하자. 우리 함께 시온에게 빛을 가져다주고 열방에게 전하자.” 가끔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메시지를 잘못 읽을 때가 있습니다. 어둠을 복종시키기 위해 권투 글러브를 끼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빛이시며, 그분이 계신 곳에는 그분의 존재 자체로 인해 어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빛된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 모습이 드러날 때, 예수님께 다가간 부자 청년과 같이 빛을 갈망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 빛에 이끌려 나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의롭고 재앙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 자신의 선지자들을 보내신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선지자들은 나라가 어둠에 휩싸이거나, 어려움이 닥치게 될 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이는 혼란과 두려움, 혼돈과 파괴, 소란과 분열 및 황폐함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듯이, 열방이 이러한 어둠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의 빛을 보고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번 어둠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무수한 십자가 처형과 박해가 만연했으며 혼란과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현재도 우리는 이와 같은 어두운 시기를 살고 있지만, 크리스천이 된 우리는 새벽에 해가 뜨듯 곧 비춰질 빛을 기대합니다. 혼란 가운데서 우리의 메시아가 탄생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둠을 밀어내는 빛이다. 나는 폭풍 속의 평안이다. 나는 네 방패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너를 지키는 너의 수호자이다.”
우리는 예언자 이사야가 경고한 시대와 매우 유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둠이 땅을 덮고, 히브리어로 ‘짙은 어둠’이라고 불리는 깊은 어둠이 사람들을 휩쓸고 있습니다. 지금은 폭력, 분열, 두려움 및 혼란의 시기이며, 선한 것이 악으로 불리고 악한 것이 선으로 불리는 시기입니다. 자유는 침해되고 정부는 건강과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시람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유대인과 크리스천 모두)은 점점 더 심한 억압과 박해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우리가 직면한 이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향한 구원과 구속, 구제와 보호의 축복이 담긴 아름다운 말씀 구절들을 이스라엘에게 직접 무수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그들만을 위한 것일까요? 이 어두운 시기에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그런 존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강해지라고, 어둠이 이 땅을 에워싸더라도 열방의 빛이 되라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기억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은 “내가 할 것이다”라는 의미로 바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쉐릴 하우어 목사(Rev. Cheryl Hauer)
BFP International 부회장
Lockyer, Herbert. All the Promises of the Bible. Grand Rapids: Zondervan, 1962.
Pesikta d’Rav Kahana 21:1, Mandelbaum ed.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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