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상담사 게리 채프먼(Gary Chapman)의 책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The Five Love Languages: How to Express Heartfelt Commitment to Your Mate)》는 지금까지 1200만 부 이상 팔렸습니다. 이 책은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 을 받는 다섯 가지 주된 방식에 대해 기술하면서,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사랑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섯 가지 방식은 함께하는 시간, 인정하는 말, 육체적인 접촉, 선물, 봉사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 www.5lovelanguages.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여러분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테스트를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이스라엘 스탭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론을 마친 후, 저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님(예슈아)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2:30).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사랑을 느끼실까요? 그분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일까요?
봉사는 저의 사랑의 언어입니다. 저는 하나님 역시 우리의 섬김을 통해 사랑을 느끼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처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연결지어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6) 이어서 십계명이 나오고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의 두 본문에 동일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라쉬(Rash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랍비 슐로모 이차키(Rabbi Shlomo Yitzchaki)는 중세 프랑스의 랍비로, 탈무드(Talmud, 유대 전통과 히브리 성경에 대한 랍비의 해설서)와 타나크(Tanakh, 구약)에 대한 포괄적인 해설서를 쓴 인물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대한 그의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은 두려움으로 행하는 사람과 같지 않으며 한층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우리의 친구이자 정통파 유대인인 모셰 켐핀스키(Moshe Kempinski)는 한 크리스천에게서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의 대답은 흥미로웠습니다. “율법을 이행하는 것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의 성취는 우리가 사랑하는 분, 가장 거룩하신 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제 아내가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제가 안다면, 최고의 사랑의 선물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겠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안다면, 그분의 바람대로 행하는 것이 그분께 드리는 사랑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신약(Writings of the Apostles, 사도들의 서신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예슈아)께서 이와 아주 유사한 말씀을 하시는 장면을 봅니다. 요한복음 14장에는 이와 동일한 개념을 강조하는 네 구절이 나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한복음 14:15, 21, 23, 24)
참으로 명확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봉사, 우리의 섬김, 즉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행동을 통해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초반부에는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와 함께 시간을 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을 읽어 나갈수록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기 원하실까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요?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기도와 묵상 그리고 그분의 말씀 속에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내기 힘들어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제한적이고 너무 많은 방해 요소들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보다 여가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면, 그분께서 우리의 사랑을 느끼실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예수님(예슈아)께서도 홀로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끼셨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태복음 14:23)
유명한 크리스천 작가인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말했습니다. “세상을 차단하고, 모든 세상적인 생각과 일에서 벗어나, 홀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갇혀, 그분께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기도의 목표로 삼고 하늘 아버지의 임재를 경험하십시오.”
시편 기자는 기록했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편 62:8)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로새서 4:2)
역대하 16장 11절의 가르침입니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역대상 16:11)
이처럼 몇몇 성경 본문들만 보더라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우리의 마음을 쏟고, 헌신적으로 자신을 드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천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마도 우리 중에 하나님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세상의 문을 닫고 모든 방해 요소들을 차단하고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저는 긍정적인 말 듣기를 좋아합니다. 주님도 그러실까요? 성경, 특히 시편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는 명령으로 가득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아마 그들은 우리의 경배와 찬송을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잘 알지 않았을까요? 성경의 많은 본문에서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찬송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그분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편 150편은 성소에서 그리고 궁창에서 악기로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34편 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편 149편은 춤을 추고 새 노래를 부르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심지어 침상에서도 노래하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6장 1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숭배]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예배]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사탄을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10)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본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 안에 그분을 향한 찬송이 충만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 중 한 명인 아삽은 말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시편 50: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선물을 받기 원하실까요? 창조주이신 그분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실 수 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이사야 66장 1절에서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물을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드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원하시며, 그분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는 자를 찾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희생 제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것이며, 대부분 죄의 제사가 아니라 찬양의 제사입니다. 히브리어로 희생은 ‘코르반(korban)’입니다. 이것은 ‘가까이 나아오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예물을 가지고 가까이 나아갈 때,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하나님께는 제사와 번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몇몇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인애[히브리어로 ‘헤세드(chesed)’이며 대개 ‘자비’로 번역됨]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6) 또 미가서 6장 6절에서 8절도 참고하십시오.
예수님(예슈아)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자비]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13) 이는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2장 7절 역시 호세아 본문을 암시합니다.
선물은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일까요? 확답할 수는 없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성전과 회당과 교회와 유대인들과 주님의 가족에게 드리는 예물을 포함하여 그분의 나라, 그분의 왕국을 돕고 지원하고 지지하길 기대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써, 육체적인 접촉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분께서 우리의 사랑을 느끼시기 위해 육체적 접촉을 필요로 하신다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혹은 두 가지의 사랑의 언어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다수의 사랑의 언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의 동기를 보시므로,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의 모든 사랑의 표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예슈아)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전(全) 존재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참으로 우리는 실질적인 봉사와 섬김으로, 경배와 찬송의 고백으로,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그분께 예물을 드림으로 그분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할 것입니다. 저는 출애굽기와 신명기와 요한복음에 기록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는 말씀에 근거해, 제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언어가 실질적인 행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한 사랑의 언어이며, 우리 모두는 각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받기 원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 인생의 최우선 순위라는 사실입니다.
레베카 J. 브리머 목사(Rev. Rebecca J. Brimmer)
Bridges for Peace 국제회장 겸 CEO
Ciuciu, Asheritah. “31 Inspiring Quotes about the Importance of Quiet Time.” One Thing Alone
Ministries. https://onethingalone.com/31-inspiring-quotes-about-the-importance-of-quiettime/
Kempinski, Moshe Avraham. The Teacher and the Preacher: A Dialogue. Jerusalem: Shorashim of
the Old City Publications, 2007.
Silberman, Rabbi A.M. ed. Chumash with Rashi’s Commentary. Jerusalem: Feldheim Publishers,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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