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새로워지는 새해 (The Year of Refreshing in Him)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새롭고 은혜로운 시작이 우리에게 매해 주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해에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다짐하고, 여러 가지 개인적인 계획들을 세웁니다. 물론 2월 말이 되면 이러한 다짐과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새해의 시작에는 늘 기쁨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이번 새해는 여느 해처럼 기쁨과 기대로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있었던 수많은 기쁜 일들을 모두 잊게 할 만큼, 10월 7일의 사건은 세상이 영원히 변한 것 같은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인질로 잡혀가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을 견디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하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수천 명의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악에 맞서 싸우며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 남편과 친구들을 위해 온 나라가 애도하고 있습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증오 범죄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예전의 평화로운 이스라엘을 그리워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저는 여러 목사님들과 리더들, 성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많은 크리스천에게 심오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크리스천들은 이스라엘 땅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을 느낍니다. 크리스천들이 이스라엘을 마음속에 품고 사랑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그분의 마음을 이스라엘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성경의 페이지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원한 언약을 발견하면서 오늘날 이스라엘이 그분의 말씀에 나오는 수많은 예언의 성취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공포에 직면하고 있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스라엘 국가 밖의 유대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어떠한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잔혹한 악몽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어두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유대인 친구들을 애도하며 그들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길 원하며, 희망의 빛이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새로워져야 할 필요성

저는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명 중 하나가 ‘소망’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이방인의 교회에서 참된 친구와 동역자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황폐해진 유대인 공동체에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 중에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자기 스스로를 위한 보람으로 느껴져 죄책감이 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행하고, 이를 통해 보람과 활력을 얻는 것이 매우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그 중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방인의 사명은 생각보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무엘상에서 이에 대한 말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방인의 사명을 자주 강조하고, 이사야와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다른 선지자들도 이에 대해 다룹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바울은 서신서에서 이방인의 사명을 자주 언급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방인의 사명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눈동자라고 부르시는 이스라엘에게 그분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 자신이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원합니다(에스겔 2:8).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는 ‘새롭게 하다’ 또는 ‘새로움’으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의미를 가진 여러 단어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단어를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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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히 고요하기

출애굽기 31장 17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이 경우, ‘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숨을 쉬거나 숨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단어는 샤밧(Shabbat, 안식일)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힘을 회복하고 충전하기 위해 움직임이나 노동을 그치고 잠잠히 지내며 모든 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쉼’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시던 일을 멈추신 것입니다. 그는 고요히 계셨고 그 과정 가운데 회복하시며 숨을 쉬셨습니다.

프로젝트나 과제를 기한 내에 완료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끊임없이 걱정해 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걱정하던
그 일이 끝나면 마침내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안도감, 휴식,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매우 강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바쁜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찾는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으면, “잘 지내요. 물론 미친 듯이 바쁘지만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 영혼의 적에게 바로 힘을 실어 줍니다. 그들은 우리가 분주하고, 일을 멈추지 않고, 쉬지 않기를 바라며, 결코 새로워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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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끊임없는 행동을 멈추고 그분의 넘치는 사랑에 젖어 그분의 음성을 듣고 호흡하면서, 그분의 임재 안에서 쉼을 찾길 원하십니다. “잘 지내세요?”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잘 지내요! 저는 주님과 동행하며 쉼 가운데 새로워지고 있어요.”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재충전되고 새롭게 되어 다시 영적 전쟁터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숨 쉬기를 원하십니다.

‘쉬다’라는 단어는 ‘숨을 불어넣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우리는 곧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다음 단계를 차분히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숨을 그의 안에 불어넣기 전까지, 아담은 그저 진흙에 불과했습니다. 그에게 생명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그를 일으키시고, 에덴동산으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숨결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안식하는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아담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소생시키시고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기

사무엘상 16장 23절에서 사울 왕은 ‘악령’에 시달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는 잠도자지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심지어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롭게 하다’로 번역된 두 번째 히브리어 단어를 발견합니다. 이것은 ‘다시 시원해지다, 식다, 더위의 영향에서 회복되다, 공기를 들이마시다, 소생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할 때, 사울에게서 악령이 떠나고 마침내 안식을 취하고 이성을 되찾았으며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만든 음악은 목소리를 높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음악이었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고, 걱정하게 하고, 의심하고 근심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 주님을 찬양할 때 도망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예배 음악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랍비들은 우리가 매일 주님을 송축해야 할 이유를 최소한 100가지를 찾아 그분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자입니까? 우리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현재 놓인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불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최근에 저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크리스천 친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을 때, 저는 그녀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굉장히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녀의 삶에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보통 사람들과 같이 신세를 한탄하는 전형적인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녀의 간증을 통해 저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공동체의 회복

이것이 우리를 세 번째 단어로 인도합니다. 성경에서 ‘새로워지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새로워지고, 그들과 함께 안식을 취하거나, 서로의 관계를 통해 새 힘을 주고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그것을 발견합니다.

• 고린도전서 16: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 빌레몬서 1: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 로마서 15: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승리하는 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2024년에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이번 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앞으로 12개월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북부 국경에서의 대립이 심해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걷는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고난 받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명을 완수하려면 주님의 ‘새롭게 하심’을 받고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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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안식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이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분의 사랑으로 씻기어야 하고 그 사랑에 충분히 잠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의도적으로 우리의 말 가운데 불평이 아닌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새로워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맹목적으로 하마스의 편에 서 있는 다수의 사람들과 맞서게 되면, 우리는 새롭게 될 것이고 우리의 간증으로 인해 다른 많은 사람들도 새로워질 것입니다.

비록 2024년에 대한 예측이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2024년을 승리의 해로 이끄시기 위해 우리를 말씀 가운데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로잡고, 불필요한 일을 멈추고,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을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순종하고 응답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법을 배우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악을 이기고,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며, 삶이 회복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가 기록하는 기적의 해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신실하심을 보는 해가 되며, 유대인과 크리스천이 함께 그분을 찬양하는, 진정으로 새로운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쉐릴 하우어(Cherly Hauer) 목사
BFP International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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